[아름다운사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 컬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뒤로가기 컬럼

기타 [아름다운사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본문

[한희철 목사]

우리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샌가 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시점에 미리 공지를 하여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인식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며시 사라짐으로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탄절과 관련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새벽송입니다. 성탄절 새벽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아무리 눈이 쌓여도, 그리고 아무리 성도들의 집이 멀어도 기꺼이 그곳을 찾아가 축복의 노래를 부르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밤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노래를 부르자마자 불을 밝히고 과자며 떡국을 대접하던 시간은 참으로 마음 훈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의 시간도 길었고, 대부분의 주거형태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이제 새벽송은 갈수록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 성탄축하행사입니다. 어린이들이 성탄의 의미를 담은 노래와 율동 등을 정성껏 준비를 하여 발표를 합니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설레고 떨리는 일, 성탄절이 다가오면 미리미리 연습을 시작합니다. 

지난 성탄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날 성탄축하행사가 있었습니다. 예배당 안을 밝히던 모든 불이 꺼지고 무대에 불이 켜지면 아이들은 순서를 따라 오랫동안 준비한 것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은 교우만이 아니어서 가족과 친지들도 적지가 않습니다. 맨 앞자리에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고 자리를 잡은 이들은 마치 특종을 잡으려는 사진기자들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즐겁기 때문이겠지요, 아이들이 발표를 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와 웃음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날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부서는 유아유치부, 가장 어린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발로 걸어서 나온 아이들이 반, 선생님과 엄마 품에 안겨 나온 아기들이 반 정도였습니다. 앙증맞게 옷을 차려입고 선 아이들의 모습은 이 땅을 찾은 천사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노래 반주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앞에 선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율동을 시작했습니다. 저 어린 나이에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아이들의 몸동작 하나하나는 환호와 박수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뜨거운 반응 속에서도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아이도 있었고, 율동을 하는 대신 뒤돌아서서 다른 아이들을 구경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쁜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동을 잘 하는 아이들은 잘해서 예뻤고,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들은 서 있는 모습 자체가 예뻤습니다.

함께 웃으며 박수를 보내다가 문득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보실 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습니다. 훌륭할 때만이 아니라 서툴고 미숙해도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무대 위 쏟아지는 함성과 박수 속에서 부동자세로 서 있기만 해도 여전히 예뻤던 아이처럼 말이지요. 웃음 끝에 눈시울이 시큰했던 것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카고교차로소개 | 미디어 킷 | 광고문의 | 신문보기 | 관리자에게
Copyright (C) KOREAN MEDIA GROUP All right reserved.
HEAD OFFICE: 3520 Milwaukee Ave. Northbrook, IL 60062
TEL. (847)391-4112 | E-MAIL. kyocharo@joinchicago.com
전자신문 구독신청

Terms & Conditions | Privacy
Copyright © 2023 Kyocharo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orks Inc.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