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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

나는 얼굴에 분(粉)칠을 하고 /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 다홍 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려 /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속에선 / 내 남성(男聲)이 십분(十分) 굴욕(屈辱)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 은반지를 사 주고 싶은 /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 처녀야! / 나는 집시의 피였다. /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를 실은 / 노새의 뒤를 따라 /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 길에 오르는 새벽은 /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노천명 「남사당」 전문

 

남사당은 남자들로만 구성된 과거의 떠돌이 광대 패거리를 말한다. 남사당패는 노래와 곡예, 탈춤을 비롯한 연극적 공연을 했는데, 남자들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연극에서 여자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들은 비교적 어리고 얼굴이 곱게 생긴 사람을 골라 여자의 배역을 맡겼다. 

‘사당’이라는 말에서 이들의 근원이 무당 또는 무속과 관계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무당은 크게 세습무(世襲巫)와 강신무(降神巫)로 나누고, 전자는 대를 이어 무당이 되는 경우이고 후자는 집안의 내력과 관계없이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경우다. 세습무의 전통에서는 무당 집안의 남자아이는 박수무당이 되어야 하지만, 박수무당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어 감에 따라 이들이 무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남사당패를 이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작품의 화자인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는 남사당패에서 여자 배역을 맡은 남자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날라리꾼들이 장터에서 관객을 불러 모으고 나면 그는 춘향전 공연을 할 때 다홍치마를 입고 ‘향단’이 역을 맡는다. 

2연의 4~6행에 나타나 있듯이, 장터에 둘러친 천막 속의 공연에서 그는 여자 목소리를 내면서 성적 굴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조라치(취라치)는 예전에 군대에서 나각을 불던 취타수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공연 시작을 알리는 남사당패의 구성원이다. 

'포장(布帳)'은 무대와 객석이 있는, 천으로 만든 막사다. 그 무대 위에서 향단이가 된 ‘사나이’는 여자 목소리를 내면서 향단이 대사를 읊으며 ‘내 男聲(남성)이 십분(十分) 굴욕(屈辱)되다.’란 표현에서 ‘사나이’의 서글픔이 느껴진다. 또 마음에 드는 처녀를 발견해도, 그녀와 서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어도, 때가 되면 떠날 수밖에 없다. ‘나는 집시의 피였다.’라는 고백처럼 끝없이 유랑하는 것이 남사당패의 운명이었다.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라는 마지막 세 행에 나타나는, 신명 속에 섞인 비애의 정서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남사당패의 한 남자를 화자로 내세워 유랑하는 인생의 한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삶 자체의 덧없음과 비애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하여 읽는 독자도 남사당패인 화자의 정서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한다. 우리 인생도, 그와 같은 유랑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삶의 덧없음과 비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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